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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게 되시거든 나의 이런 의사를 좀 전해 주실 수 없을까요?”번갯불처럼 자운 아가씨의 머리

속을 스쳐 나가는 생각이 있었다.’홍백은 신출 귀몰하게 종적을 감추는 자기 방주의 소행을 마땅

치 않게 여기기 때문에 이렇게 나에게 귀엣말을 해서 자기 심정을 고백하는 것이구나!”맞았다!

방금 날 보고 찡긋 눈짓을 해준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것은 마생이 바로 신영궁 출신이고, 내가 어렸을 적부터 마생과 같이 자라난 사이라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이때, 또 홍백 아가씨의 모기 소리만큼이나 가느다란 음성이 자운아가씨의

귓전에서 속삭여졌다.”그리고 또 이런 말도 전해 주세요. 만일에 어떤 남빛 옷을 입은 늙은이

를 만나게 되거든 특별히 조심하라구요. 그 늙은이는 일견사(一見死)라는 무시무시한 이름

을 가진 우리 방의 취우사자인데, 특히 이 늙은이의 단혼지(斷魂指)라는 수법을 조심하라구

요.”‘일견사!”단혼지 !’듣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명칭들이다. 자운 아가씨는 고개를 쳐들어

홍백 아가씨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노려보며 또 뭣인가 물어 보려고 했다.그러나 홍백 아가씨는

날쌔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또 아래턱을 까딱까딱해 보였다.자운 아가씨도 재빨리 눈치를

챘다.고개를 옆으로 흔든 것은 아무 말도 더 하지 말라는 뜻이고, 턱을 까딱까딱한 것은 여태

까지 해준 말이 모두 사실이니, 그런 줄 알고 그렇게만 해달라는 뜻임을‥‥‥‥홍백 아가씨

는 돌연 큰 소리를 내서 말했다.”자아, 우리 그만 떠나기로 하죠! “자운 아가씨는 사방을 휘

둘러 봤다. 마생은 지금쯤 이 괴상한 산협에서 떠나가고 말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

혼자만의 어떤 희망과 기대를 걸어 보기도 했다.’천하제일방 방주가 나에게 해준 말을 마

생도 어디선지 숨었다가듣고 갔으면 좋으련만‥‥‥”마생이 이번에 돌아온 것은 첫째로

자기 자신의 신세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 보자는 목적일 것이니까, 천하제일방 방주의 말

을 들었다면 그 수수께끼가 차츰차츰 풀려져 간다는 것을 확인했을 터인데‥‥”그렇게 되면

자운 아가씨는 화사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하루 내내 양미간을 누르고 있던 우울한 먹구

름장이 천하제일방이란 일진 광풍(一陣光風)으로 깨끗이 날아가 버린 것 같은 시원함을 느

꼈기 때문이었다.고개를 까딱까딱하면서 홍백 아가씨의 뒤를 따라서 계곡 어귀를 향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두 아가씨들이 계곡 어귀까지 나왔을 때, 화려한 마차 한 채가 벌써 거기

서 기다리고 있었다.마차 옆에는 흑의의 장정 하나가 자운 아가씨의 연지마 고삐줄을 잡

고 대령하고 있었다.자운 아가씨는 쌍끗 웃었다.”또 마차를 타고 가자는 건가요?”

백 아가씨도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