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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서기는 얼마나 놀라운 속임수를 써서 교묘하게 몸을 피했나. 그러

나 오늘 아침에는 꼼짝도 못하게되었다. 자칭 비범한 고수라고 뽐내며 천기부록을 탐내는 무수한

인물들이 달려들었을 때, 피리의 힘으로 기적을 일으켜 그들을 순순히 물러나게 하지 않았다면,

일대 결투가 벌어져서 처참한 살상의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고, 여러 사람들의 원한 관계는 점점

더 확대되어서, 나는 스승의 ‘까닭 없이 경솔한 살상은 삼가라’는 교훈조차 지키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이제 서기와 그의 제자는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한 발자국도 옮겨 놓고 다닐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어떤 문파의 사람에게든 붙잡히기만 한다면 서기와 제자 유사고 아가씨

가 받아야 할 고난이란 형언키도 어려울 것이 아닌가.’소세옥은 생각하면 할수록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그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은혜와 원한 관계를 분명히 하고 살아가고 싶으며, 신의라

는 것을 가장 존중하는 청년이었다.그들 스승과 제자가 자기 일 때문에 무서운 싸움판 속으로 휩

쓸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모른 척하고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그렇다고 괴로운 심정

을 그들 앞에서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었다.서기는 천하의 쌍벽이라 일컫는 인물 중의 하나다. 평

생을 무수한 사람들을 속이면서 살아왔다. 그만 눈치는 못 챌 리 없었다. 소세옥의 얼굴을 유심

히 한 번 힐끔 쳐다보고 벌써 그가 뭣을 생각하고 있는지, 마음속을 꿰뚫고 들여다보듯이 알아

챘다.별안간 껄껄대고 웃었다.”하하하! 핫! 핫! 아우님은 지금 나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거지?”

소세옥은 고개를 끄덕끄덕할 뿐, 괴로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무 것도 대답

할 말이 없어서 멍청히 서기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서기가 웃는 낯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시궁창 물 속인 줄 뻔히 알면서 이 서기 주총은 뛰어 든 길일세. 이 형에게는 벌써부터 꿍꿍이속

이 있단 말야! 맞았어! 속임수로 살아와, 무술 재간으로 따지자면 그놈들을 못 따라 가지만, 만

일에 지혜로써 싸운다면 어떤 놈도 나를 당해 내지 못할 걸세. 아우님이 걱정할 건 없단 말야!

앞에 바라다 뵈는 높직한 마을이 있지 않은가. 나는 저 마을을 목표로 하고 여기서 강변으로 올

라설 테니, 내일 모래, 아니 글피쯤 우리 신계 땅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세 ! 그러면 만사 틀림없

이 잘될 거야.”그 이튿날 저녁 때.신계 서문 밖으로부터 한 필의 대추빛 연지마가 달려들어 오

고 있었다.말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은 바로 봉명장의 장주 정기봉의 천금같이 귀한 딸, 세상 사람들

이 자운봉이라 일컫는 정자운 아가씨였다.아가씨의 양미간에는 가벼운 수심이 서리어 있었다.

매서워 보이는 눈초리에 어딘지 모르게 약간 원망의 기색조차 번득였다.